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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공익활동

재단 설립 발표 기자회견을 가진 아산재단은 우리 사회의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1977)

아산사회복지재단

우리나라도 더 이상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경제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 가난과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산은 힘겨웠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이제는 기업의 이윤을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77년 7월 1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고,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농어촌에 종합병원을 짓고,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인재들에게 장학금도 주었습니다.

더불어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의료사업

1978년 7월, 전북 정읍에 아산병원이 개원되었습니다. 의료시설이 턱 없이 부족한 농어촌, 다섯 군데 농어촌 지역에 종합병원이 들어선 것입니다. 질병과 가난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아산의 뜻이었습니다.

1989년에는 서울아산병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환자 중심 병원, 첨단의학의 터전이 마련된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첨단의학을 배우러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아산은 "참된 인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병원을 설립한 목적은 국민 모두가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복지사회 건설에 있습니다. “

2008년 모두 8개로 늘어난 아산병원은 아산의 뜻을 따라 따뜻한 '의료복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아산병원 개원 기념 리셉션에서. (왼쪽부터)이문호 원장, 대한적십자사 총재, 아산, 조완규 서울대 총장(1989)

<장애인복지편람> 출판기념회에 참석자와 담소를 나누는 아산(1982)

학술연구 지원사업

국가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는데도 소외된 이웃을 향한 손길은 부족했습니다.

아산이 나섰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건물을 짓고 필요한 물건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장애인과 노인,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차량도 지원했습니다.

더불어 살면서 함께 행복하기 위한 일. 아산의 뜻은 세대를 넘어 이어질 것입니다.

“ 호주머니 지갑에 든 것만 내 돈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것이요, 나라의 것이다. ”

1980년 언론 인터뷰에서

제 3회 아산재단 연구교수 간담회. 재단은 시대적 변화와 학계의 요구를 반영하여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1979)

사회복지 지원사업

끊임없는 학술연구는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갈 원동력. 그러나 인재도 연구비도 부족한 실정이었습니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각 분야의 학술연구지원으로
경제와 사회문화 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이끌자. “

아산은 경제개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의 지원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문·사회과학 분야로 지원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매년 열리는 심포지엄, 학술지원을 통한 연구논문과 출판사업.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고자 했던 아산의 뜻에 따라 우리 사회의 이정표를 세워 나갑니다.

아산상, 아산의학상

이웃 사랑에 앞장선 사람들, 남다른 효행을 실천한 사람들, 이들을 거울 삼아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 아산이 '아산상'을 만든 이유입니다.

1989년 제정된 아산상은 효행자에서부터 봉사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수여 됐습니다. 현재 8개 분야로 확대되어 봉사와 사랑의 정신을 북돋우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아산의학상을 제정해 인류의 건강 증진을 위해 의학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의학자를 발굴하여 격려하고 있습니다.

상의 제정 취지에 따라, 아산상은 아산의 생신일인 매년 11월 25일에, 아산의학상은 기일인 3월 21일에 수여됩니다.

제 6회 아산효행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과 함께한 아산. (왼쪽부터 김종은, 정문수, 고두심, 아산, 최불암, 성규탁, 박명용, 1996)

아산장학생 졸업생 환송회에서. 아산은 “인재를 키우는 일을 가장 보람된 일”로 여겼습니다.(1979)

장학사업

또래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농사일을 했던 아산. 뼈저린 가난, 공부할 수 없는 아픔을 알고 있었습니다.

폭넓은 장학사업으로 그 아픔을 보듬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부터 우수한 인재들까지, 중학생에서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아산의 도움으로 포기했던 꿈을 다시 펼칠 수 있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장학생 자치모임인 '정담회'에서 공동체 의식을 키우고, 여름이면 농촌봉사로 베푸는 삶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나눔이 또 다른 나눔을 낳고, 새로운 꿈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