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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사회교육

현대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격려사를 하는 아산, 아산은 못다한 배움의 뜻을 학교 설립을 통해 펼쳤습니다

교육

사람은 자본보다 기술보다 훨씬 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야말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산은 인재 육성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산업발전의 중추가 된 울산지역에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대학을 설립했습니다. 지역사회교육협의회의 설립과 운영을 지원해, 학교, 학부모, 지역주민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한때 고려대학교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벽돌과 목재를 나르던 아산. 마음껏 배움의 기회를 누리는 학생들이 부러워 물끄러미 교정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산은 주먹을 꼭 쥐며 더 큰 꿈을 키웠습니다.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을 후학을 키우고 인재를 양성하는 더 큰 꿈으로 바꾸어 곳곳에 배움의 주춧돌을 놓은 아산의 큰 뜻.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참 인재를 키우고 있습니다.

“ 나는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 가장 귀한 것이 사람이고
자본이나 자원, 기술은 그 다음이라고 확신한다. ”

1984년 지역사회 학교 후원회 연설에서

아산은 국제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올림픽 훈장을 받았습니다. (왼쪽은 사마란치 IOC 위원장, 1998)

체육

인격을 성숙시키고 세계 평화와 국가 발전을 이끄는 힘. 아산은 스포츠 정신의 힘을 믿었습니다.

아무도 가능성을 믿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국가 경제의 앞날을 생각하며,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IOC 총회가 열리는 독일 바덴바덴으로 떠났습니다. 아산은 그곳에서 각국 IOC 위원들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일본 나고야를 상대로 하는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세밀한 분석과 겸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각국 IOC 위원들의 방에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쎄울, 꼬레아!”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장으로 국내 체육계의 저변을 확대했으며, LA올림픽대회와 ‘86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경기력 향상과 인재 양성에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았던 스포츠 정신, 경기장의 환호와 함께 우리의 심장에 살아 있습니다.

정치

아산은 정치와 경제가 함께 손잡고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래의 국가는 통치가 아니라 경영을 해야한다고 믿었습니다.

기존의 시스템에 도전해서
국민의 미래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 “

아산은 '큰 정치'를 내걸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했습니다.
창당 45일 만에 국회의 31석을 차지한 것은 그의 진심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습니다.

나는 선거에 나가 뽑히지 못했을 뿐이다.
후회는 없다. “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었으나, 우리 모두에게 민족적 과제를 일깨운 큰 울림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 유세 중 어린이들의 응원에 기뻐하는 아산. 아산은 어린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격려하는 인자한 할아버지였습니다. (1992)

영국대처 수상과 함께 한 아산과 정몽준 이사장.(1980년대 후반)

국제교류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은
세계 도처에 있다. “

아산에게 국경은 아무 의미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기업활동은 세계를 향해 있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 세계적 리더들과 손 잡고 공동 번영과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세계 곳곳에 진출해 국가 기반시설을 건설했으며 그들의 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한ㆍ아랍 친선협회, 한ㆍ아프리카협회, 한ㆍ소 경제협회 등 공동 발전을 위해 세계를 누볐습니다. 소련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큰 역할도 해냈습니다.

평화와 발전의 동반자였던 아산, 여전히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남북관계

민족의 미래는 화해와 평화에 달려 있다는 신념. 남북이 함께 번영하기 위해 누군가는 헌신해야 한다는 믿음. 아산의 남북관계 교류사업은 이 믿음에서 비롯됐습니다.

체육 교류와 문화 교류를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었으며, 남북 공동 영농사업과 공단 개발, 특별경제지구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남북이 함께 잘 사는 길을 찾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1998년 6월 15일, 서산농장에서 정성껏 기른 소 500마리를 끌고 남북 대결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을 통과한 날, 아산은 민족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었습니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길도 열었습니다.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역사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판문점을 넘는 통일 소 떼.가출할 때 들고 나온 70원의 소 판 돈이 , 1,001마리(1,2차)의 소로 불어나 아산의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1998)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왼쪽),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오른쪽)과 함께 (1983)

전경련

혼신의 힘으로 기업을 키워 국민 경제에 헌신하는 것, 국가 근대화 건설을 위한 선구자가 되는 것, 아산은 이것이 경제인의 역할이며 임무라고 믿었습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기업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맡아 경제 건설과 발전을 돕는 한편, 기업이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경제정책을 건의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할 길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발전의 열매 안에 아산의 노력과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